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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llo x Kurapika
w.s
비가 내리는 거리의 골목은 어두워서, 그의 밝은 금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숨을 들이킬 때마다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소리에 예민해져서 누군가가 머리를 내려치는 것처럼 쾅쾅 울렸다. 붉은 눈의 촛점이 흐트러져있다. 수 많은 생각이, 목소리가, 그의 목을 죄었다가 풀어주는 것 같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을 찾으면, 아, 모든 슬픔과 기쁨을 동포와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ㅡ쿠르타 족의 마지막 한 명인 제가 모든 원한을 풀때까지! 그의 손에서는 비명처럼 쇳소리가 났다. 손목에서부터 손가락으로 미끄러져 서로 부딪히는 사슬의 소리다. 그 사슬 끝에는 한 남자의 팔이 묶여있다. 남자는 무표정해 보이고, 그 입술은 차가워보인다. 그의 새카만 눈에는 누구든 얼어붙게 만드는 안광이 있다. 사슬의 주인은 그 눈이 소름끼친다고 생각했다. 개자식.
환영여단의 리더를 사슬로 포박하겠다는 크라피카의 계획은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다. 즉, 실패했다. 어둠의 틈을 타 사슬로 구속하려 했었지만, 남자는 한 쪽 팔을 내어줬을 뿐이다. 크라피카가 남자를 끌어당긴 순간, 자유로운 나머지 손이 크라피카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크라피카는 놀라 클로로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허리에서 깊은 통증이 느껴졌다. 자신에게 무슨 수를 쓴 건진 모르지만, 넨이 반감된 것 같았다. 크라피카나 클로로나 상황은 비슷했다. 클로로는 사슬의 주인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무례하다고 여길만한 시선이었다.
"사슬잡이가 여성일 줄은 몰랐는데."
"내가 그렇게 말했었나?"
고개를 홱 돌린 그의 얼굴에는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 붙어있었다.
"발언에 주의하는 편이 좋을거야. 어떤 게 네 마지막 말이 될지 모르니까."
냉정하지 못한 그의 상태를 보니 클로로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크라피카에게 맞아 한쪽이 터져 있었지만, 아픔이나 하다못해 쓰라림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이 모든 걸 이미 한 번 겪었던 것처럼 그는 침착했다. 아니면 정말 클로로는 크라피카를 만난 적이 있던가? 하지만 그랬을 리는 없다. 저 붉은 눈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니까.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않나."
크라피카는 즉각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라피카가 아무렇게나 입술을 닦자, 립스틱의 연한 붉은 색이 길게 남았다. 클로로가 성큼 다가와 볼을 쓰다듬으니 키스하려는 줄 알았는지,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사실 거짓말이다.
그는 이를 드러내고 클로로의 손을 물어뜯으려 했다. 클로로는 손이 피투성이가 되는 참사는 피했지만, 크라피카의 주먹은 또 다시 클로로의 얼굴을 강타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클로로를 속박한 중지의 사슬은 여단을 속박하고 제넨 상태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비록 크라피카가 허리를 내준데다 클로로가 왼쪽 팔만 구속되어 있지만, 제넨 상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걸 눈 앞의 남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유롭다. 이 참을 수 없는 불쾌함은 무엇인가.
"파악이 안되나본데, 네 놈은 지금 내 사슬에 묶여있는 처지란걸."
그 말에 클로로가 웃었다.
"아니."
클로로가 사슬을 끌어당겼다.
"우리가 서로 묶여있는거지."